[김덕해 칼럼] 본업에 충실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교육에 열정이 많아 부모들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자녀교육에 힘써 왔다.
교육은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좋은 직장을 얻어 충분한 소득으로 잘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능력의 계발이라는 것이 전인교육을 추구하여 지덕체의 균형된 발달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지식위주로 과외를 한다.
지식의 범주는 언어, 수학, 귀납적사고, 연역적사고, 인지속도, 입체적인지, 그리고 암기력 등으로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집중 분야가 달라 우열의 평가가 매우 어렵다.
자신의 적성과 취미가 직업과 일치해야 생산성이 증가하며 본인도 행복해진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어머니가 자식을 해외로 데리고 가 기러기처럼 교육하고 있는 것도 많이 보게 된다.
그 교육열에 나날이 감동하고 있다. 다만 희생만큼이나 교육성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생이 길지 않는데 내외간에 헤어져서 오래 지낼 수가 있을까, 궁금할 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나 물질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온통 비싼 자동차나 명품 같은 것에 몰입해 있어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친척 중 한 여성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국제결혼을 해 미국에 살고 있는데, 국제결혼을 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 남성들의 물질만능주의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보다 풍요해진 데다 자녀가 통상 한두 명이니 젊은이들이 물질적 가치를 중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귀한 자녀일수록 명품만 찾는 속물이 되지 않도록 인생의 참된 가치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최근 종교의 발전사를 고대 종교로부터, 유대교·천주교·기독교·이슬람까지 개략적으로 읽어 보았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공통된 가르침이었다.
천주교나 기독교는 한국의 개화기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불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였다.
그런데 최근 종교인들의 정치참여가 지나쳐, 그 정도가 정치인들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실례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야당 편에 서서 정치선동에 나서고 있다.
독재정권하에서는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그들의 정치참여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당 간 정치싸움에 끼어들고 있으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교계도 지나치게 세속 정치에 개입해서 정치도구화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일진대, 사람들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을 기억해 주면 국민들이 감사해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본업을 벗어나 여기저기 넘보는 방랑자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건강하고 선진적인 사회일수록 직업주의를 존중하고 자기의 본업에 충실하고 있다. 남의 일은 내 일이 아님을 인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