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빗속에서 엄숙히 치러졌다. 평생을 민주화와 시민을 위해 헌신한 박 전 시장이 우리 사회에 남긴 영향력은 상당하다. 수많은 지지자와 시민이 그를 애도하며 애통해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고인에 대한 정리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인의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하되 잘못에 대해서도 사실관계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고 재발방지를 할 수 있다.

박 전 시장 영결식 후 피해자측이 기자회견을 열어 어렵게 심경을 밝혔다. 피해자 변호인단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 4년간이나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에 터졌는데도 성추행은 계속됐다고 폭로했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박 전 시장이 스스로 극한 선택을 한 것도 가책을 느낀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번 박 전 시장 사건에서 서울시와 경찰 청와대가 취한 무책임한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지난 5월 피해자가 법률대리인을 찾기 전까지 서울시 내부에 성추행과 성희롱 등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다는 등의 이유로 묵살 당했다고 한다. 수사가 착수되기도 전인 고소 당일 박 시장에게 상황이 전달된 정황도 있다. 경찰은 관례에 따라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는 이를 인정했다. 그런데 경찰과 청와대가 박 시장에게 알린 적이 없다면서 책임 미루기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

염려스러운 것은 여권 인사들까지 2차 가해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여권 중진들이 너무 맑은 분이기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으면 죽음을 택했을까라는 등의 발언으로 고인을 미화하고 있다. 심지어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가짜 미투의혹을 제기해 분란을 키웠다. 그는 박 전 시장이 정치권의 논란 과정에서 입게 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죽음으로서 답하신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자신과 가족이 이런 피해를 당해도 똑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피해자 지원 단체의 요구는 박 전 시장의 명예훼손이 목적이 아니라 사건의 진상 규명이다.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피고소인이 부재한다고 해서 실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며, 진상을 밝히는 것이 피해자 인권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도 한 여당 의원은 박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이대로 상처를 안은 채 위태로운 생을 살라는 말이며, 성폭력의 재발 방지 의지조차 스스로 차단하는 말이다. 뻔뻔한 건지,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인지... 이들에게 피해자 입장을 배려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먼 나라 얘기인 것 같다.

피해자는 거대한 권력에 맞설 용기가 없어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를 묵살하면 도덕성을 지향하는 진보정당인 민주당에 큰 생채기가 남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성추행·성폭행과 관련 문제를 일으킨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충남지사 부산시장에 이어 3명 째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렇게 많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고위 공직자를 배출하지 않았다.

이해찬 대표가 어제 수석대변인을 통해 간접 사과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특단의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공식적으로 직접 사과해야 민주당으로 향하는 비난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자체 감사 등으로 관련자들을 엄하게 징계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가 제2의 가해를 당하지 않고 일상과 직장으로 돌아가게끔 야당인 통합당도 경쟁 거리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폴리스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