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최초 대장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이 가장 존경한 韓 군인

백선엽 장군
백선엽 장군

 

6·25 전쟁의 영웅이자, 창군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0일 오후 11시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201123일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평양사범학교 나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군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던 백 장군은 해방 직후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월남했다. 1945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4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이 되어 개성 지역을 담당했다. 같은 해 6월 초 경기도 시흥 보병학교에서 고급 간부 훈련교육을 받던 중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가 발발했다.

6·25 전쟁 당시 백 장군은 수없이 많은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고, 특히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에서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며 배수의 진을 쳐 후퇴를 막아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일화는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백 장군은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하였고,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편은 물론 1952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방한 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해 참모총장 재임 당시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한 일화도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당시 나이 33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옛날에는 임금만이 대장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화국이라서 신하도 대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 장군은 1960년 대장으로 전역한 뒤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국방대학교 사상 첫 명예군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8군사령부는 전쟁 당시 한국 방어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달성했다는 공로로 2013년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 복무 사실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0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명예 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불발됐다.

고인은 태극무공훈장(2),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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