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재단은 8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 지하 1층 K-biz홀에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등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김대중 재단에 따르면 이날 닻을 올리는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이하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인 2024년 1월 6일 열리는 기념식을 비롯해 내년 한 해 국민 속에서 다양한 기념사업과 행사를 펼쳐나갈 계획이다.
재단은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정치보복을 배제하고 화해와 용서, 관용과 통합 그리고 평화를 추구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진영과 여야, 지역, 세대, 성별, 계층, 노사 등 우리사회의 모든 대립과 갈등 구조를 초월하여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범국민적 기구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특히, 국민통합 차원에서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세 분의 전직 대통령을 명예추진위원장으로 위촉했으며 김대중 대통령 유가족 및 전직 대통령들의 유가족,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회 임원들은 명예특별고문으로 참여하게 된다.
공동추진위원장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정당대표, 문희상 김대중 재단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장, 김홍업 유족 대표가 위촉됐다.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 이종찬 광복회장, 정대철 헌정회장, 김덕룡 김영삼센터 이사장, 전 국회의장 및 전 국무총리 등은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 각별하게 지내셨던 7대 종단대표들과 윤공희 대주교, 김상근 목사, 오충일 목사, 함세웅 신부, 김명자 이사장, 백낙청 명예교수, 임권택 감독, 장상 명예교수, 황석영 작가 등 재야와 각계 원로들은 원로자문위원으로 참여한다.
현역 국회의원들과 경제 5단체장 등 재계대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대표, 현역 광역단체장 등은 특별자문위원과 특별고문 등으로 위촉했으며, 이밖에 자문위원, 상임지도위원, 지도위원, 추진위원 등에는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다양한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그동안 ‘기념사업 준비위원장’으로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구성을 주도해온 문희상 김대중 재단 준비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합과 평화의 정신에 따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기 위해 모든 대립과 갈등을 넘어 각계각층을 총망라해 범국민적 기구로 추진위를 구성했다”며 “추진위원 수가 1만 명에 달해 말 그대로 ‘만인이 참여하는 국민통합 대잔치’로 기념행사가 치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 준비위원장은 “4년(2028년) 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그 4년(2032년) 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각각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향후 전직 대통령들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8일 행사에서는 ‘대중의 길’ 헌정 영상 상영,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엠블럼 및 슬로건 공개, 추진위원회 소개, 100주년 기념식 및 사업보고와 함께 후원의 날 행사가 함께 치러졌다.
참고로 김대중 탄생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평화와 통합의 세계지도자 김대중·브란트·만델라 특별 국제학술회의’를 지난 9월 12일 개최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국민과 함께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IT산업과 한류 문화강국의 기반 조성, 생산적 복지체제 구축, 남북관계 진전으로 인한 한반도 평화정착 등 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이러한 업적들은 김 전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 관용과 통합, 미래 통찰의 바탕 위에 이뤄졌다. 김대중 재단과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하나로 미래로’ 기치 아래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이 같은 김대중 정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발전시켜나갈 방침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사후 출간된 ‘김대중 자서전’에는 “전라남도 무안군(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서 1924년 1월 6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인이 두 사람이었고, 내 어머니는 둘째 부인이었다. 어머니는 큰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따로 살았다. 그 삶이 곤궁하였다. 당시에는 남자가 둘째, 셋째 부인을 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드리고 싶었다.”라고 시작한다.
DJ는 평생 ‘출생’과 관련한 소문에 시달렸지만 침묵했다. 어머니에게 차마 ‘작은댁’이라는 멍에를 씌워줄 수 없어서였다고 DJ는 적었다. 인생을 마감할 무렵 자신이 서자(庶子)라는 사실을 밝혔다.
79석의 의석으로 대한민국 첫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처음’이었던 만큼 당연히 아쉽고 부족한 것이 있었고, 인간이기에 결점도 있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DJ는 평생 자신을 탄압한 정적(政敵)을 용서하고 화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탄압받을 때부터 “적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한다”면서 관용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찾았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박정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아 기념관을 추진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쇼’라고 비아냥댈 수 있지만, 시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대단히 쉽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기자 시절 DJ와 주변을 지켜봤던 저는 때때로 ‘용서’와 ‘화해’의 위대함을 돌이켜보곤 한다”며 “지역, 계층, 세대, 남녀 간의 분열과 대립, 갈등과 갈라치기가 더 심화하고 있다”면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특별자문위원을 맡았다. 기쁜 마음으로 김대중 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국회의원으로서, 여당의 지도부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을 찾아 일하겠다”라고 밝혔다.
